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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ILDING(국내)

미내다리, 논산시, 1731

by nearby_arch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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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내다리

Ganggyeong Minae Bridge

건 축 가 : 송만운, 유승업 등(비문 기록)

대지위치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541

준공연도 : 1731(영조 7년)

주요용도 : 교량

규 모 : 길이 30m, 폭 2.8m, 높이 4.5m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현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조차 생소한 이 지역은 과거에는 시장이 크게 발달한 유통,물류의 중심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에 위치하고, 서해-금강을 통해 전국 각지로 물자를 유통하던 중심지였으며, 1800년대 강경포에 형성된 시장은 평양, 대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시장'으로 불렸다.

동해안의 원산, 서해안의 강경은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2개의 포구가 있는 지역이었고, 수많은 배가 드나들 정도로 큰 포구 였다. 또한 이 지역은 1900년 대 이후 가장 빨리 근대화가 이루어진 지역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 강경의 황산나루엔 하루 100여 척의 고깃배와 상선이 줄을 섰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장사치들이 2만∼3만명 모여들어 원산에 이어 조선 2대 내륙 항구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은진(논산)은 강경 덕에 산다’는 말은 생겨나기도 했다.

오늘 다룰 다리(교량)는 활발했던 상업과 함께 번성을 이루던 이 지역의 소중한 문화재인 강경 '미내다리'이다.

미내다리는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위치한 다리이다. 조선시대인 1731년에 축조한 이 다리는 현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 다리는 당시 조선시대에서 국가차원이 아닌 물자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민간인들이 주도하여 놓은 다리이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 물류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고, 돌다리를 민간차원에서 축조할 만큼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m 길이의 다리는 3개의 아치(홍예)로 구성되었으며, 석재를 정교하게 쌓아올린 석교이다. 40㎝×50㎝×110㎝ 내외의 장대석을 사용하여 다리를 구성하였고, 3개의 아치의 정점에는 호랑이머리, 용머리, 꽃봉오리 형태로 조각된 키스톤이 장식되었다.

다리의 윗면인 보도역시 석재를 활용해 긴 장대석이 두줄로 깔려있고, 보도를 지탱하는 경계석은 석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난간밖으로 돌출된 형태를 하고 있다.

다리 상부는 장대석을 정교하게 쌓아 보도를 만들었다.
보도의 장대석이 교차하는 부분에 경계석을 끼워 넣었다.
미내다리 홍예 머릿돌(키스톤), 중앙에 가장 큰 아치에 호랑이머리 장식으로 된 키스톤이 있다.
용머리 형상의 홍예 머릿돌(키스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도 미내다리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작성되어 있다. '미내천에 다리가 있었는데 조수가 물러가면 바위가 보인다 해서 "조암교(潮岩橋), "라 했다'

건립을 기록한 비문에 따르면 조선시대 영조 7(1731년)에 축조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역할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내다리라는 명칭은 이 다리가 위치한 하천인 강경천을 '미내'라고 부른데서 유래된 것라고 추정하고 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미내다리는 현재는 활용되지 않고 있는 다리이다.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찾기 힘든 위치에 있고, 안내판도 없고 좁은 둑방 길을 힘겹게 따라 가야만 만날 수 있다. 흔적만 남아버린 포구의 풍경에서, 미내다리는 방치된 수풀들과 함께 강바닥에 쓸쓸히 남아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소중한 역사적 유산을 만나보고, 그 가치를 다시금 느낄수 있기를 바란다.

ps) 과거 논산 강경일대에는, 죽어서 염라대왕에 서면 염라대왕이 '너는 이승에 살 때 개태사의 가마솥, 관촉사의 미륵불,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으냐?"라고 묻기 때문에 죽기 전에 꼭 미내다리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현대시대를 살아가는 많은사람들은 소위 '핫플레이스'라 불리는 SNS에 올릴만한 깔끔한 신축 카페, 갤러리 등을 찾아다닌다.

국내에는 오래전 과거에 엄청난 '핫플레이스' 였고, 아직도 그 흔적과 기억이 살아있는 장소와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나는 그런것들이 한낱 옛것으로 치부되고 '단순한 문화재'로 분류되어 서서히 잊혀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강경 미내다리에 방문했을 당시,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너무나 황량한 강가와 좁은 둑방길에 당황스러웠다.

둑의 아래에 숨겨져 있어 쉽게 찾기 힘든 위치에 있어서, 차를 주차하는 그 순간까지도 다리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차에서 내려 흩날리는 잔디밭 너머로 미내다리를 마주했다.

미내다리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약 300년이 지난 지금도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내눈으로 바로앞에서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작게만 보였던 다리는 가까이 다가갈 수록 규모가 크고 압도되는 분위기는 나타냈다. 누군가 한국의 아치, 석교 등에 대해 얘기한다면 나는 첫번째로 이 '미내다리'를 얘기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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